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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8일 오후 1시 35분경 ‘심정지’판정

NTM특별취재단 | 기사입력 2009/08/18 [14:29]

<종합>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8일 오후 1시 35분경 ‘심정지’판정

NTM특별취재단 | 입력 : 2009/08/18 [14:29]

 


대한민국 민주주의 거목(巨木), 끝내 사라지다

18일 오후 1시 42분, 제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 85)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두 달만에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올해에만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잃는 슬픔을 안게 되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 서거하셨다'며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와 며느리 등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최종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과 절차 문제 등 후속 조치 논의에 착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큰 정치지도자를 잃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도 심심한 애도를 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자취>

김 전 대통령은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4 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 전 대통령은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80년에는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다음 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82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이듬 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 공조를 앞세워 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최고의 정보화 사회를 구현했으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와 인사편중 시비, ‘햇볕정책’을 둘러싼 보수층과의 갈등으로 임기 내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퇴임 후에도 대북 비밀송금과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측근들이 기소되고 현실정치 개입으로 정치권과 마찰을 빚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60년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3김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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