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대한민국의 2009년은 비극의 해

연이은 큰 지도자들의 영면에 국민 상실감 커져

고은영 | 기사입력 2009/08/18 [22:41]

대한민국의 2009년은 비극의 해

연이은 큰 지도자들의 영면에 국민 상실감 커져

고은영 | 입력 : 2009/08/18 [22:41]

 


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공감성 가슴 속에 쌓이는 듯

2009년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해가 될 것 같다.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했던 세 사람의 거목이 잇달아 ‘서거’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월 18일 오후 1시43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눈을 감았다.

연이은 큰 지도자들의 ‘서거’로 인해 국민들은 ‘패닉’에 가까운 충격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하루 종일 ‘애도’의 글이 넘쳤고,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오랫동안 계속 이어질 듯 하다.

더불어 잊혀지는 듯 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도 되살아나고 있어 현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터넷상의 여론 흐름이 국민들의 여론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가 현 정부의 탓이라는 인식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어 현 정부와 여당은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큰 충격을 받고,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추도사’도 못 읽게 한 현 정부의 행태에 ‘격노’했던 김 전 대통령이 ‘울화’가 쌓여 지병을 더욱 악화 시켰을 것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결론부터 보자면 현 정부와 여당은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눈치다.
정부와 여당 중진들은 모두 입을 닫은 상태이다.
혹시 잘 못 입을 열었다가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줄곧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투옥, 수감, 망명생활을 이어갔다.
1980년에는 학생 소요사태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되어 광주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되살아 났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정부’를 이뤄냈다. 재임 당시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2000년에는 이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도 탓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5월 23일 봉화마을 사저 뒤편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오전 9시 30분경, 결국 영면의 길을 떠났다.

‘박연차 게이트’로 시작된 측근에 대한 잇따른 구속 등 검찰의 의도적 수사에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국민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국민장’으로 치러진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봉화마을에는 5백만이 넘는 추모 인파가 몰려 애도를 표한 것만 봐도 국민들의 마음은 쉬 짐작할 수 있었다.
인권변호사로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던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을 통해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치자금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질서 부분에서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정부’는 그 동안 권위적인 정부를 국민들과 함께 하는 낮은 정치를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 볼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0~80년대 군사독재 억압 속에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낸 성직자였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1월26일 명동성당에서 인권회복미사를 열어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추기경으로 활동하면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각 영역에 목소리를 낸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 당시 명동성당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추기경을 추모하는 인파들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연이은 지도자를 잃은 국민들의 상실감은 자칫 생활에서의 무기력증, 우울증, 더 나아가 불안장애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학계의 우려는 물론, 분열된 국민들이 서로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회학자들의 우려 또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