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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완패'로 끝난 한명숙 전 총리 2차 공판

검찰측에 오히려 '비수'로 작용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고은영 | 기사입력 2010/03/12 [02:23]

검찰의 '완패'로 끝난 한명숙 전 총리 2차 공판

검찰측에 오히려 '비수'로 작용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고은영 | 입력 : 2010/03/12 [02:23]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김형두)열린 한명숙 전 총리 2차 공판은 검찰이 중요한 증인으로 내세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횡설수설'과 공소장과는 다른 내용의 진술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곽 전 사장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진행된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내용과 다른 증언을 하고, 공판이 끝날 무렵에는 검찰의 '강압수사'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는 증언까지 해 검찰측 증인이 오히려 검찰을 불리하게 만들게 되었다.

곽 전 사장은 이날 공판의 중요한 요인들에 대해 공소내용과 상반된 증언을 했는데, 한 전 총리는 유리해진 반면, 검찰은 '표적수사' 논란에 빠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전 총리에게 총리 공관에서 5만달러를 전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 곽 전 사장은 "자신이 2만 달러, 3만 달러의 돈 봉투를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며 공소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는데, "돈 봉투를 총리 공관 오찬장의 의자 위에 놓고 나왔고, 한 전 총리가 돈을 두고 나오는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시말해 한 전 총리가 못 봤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배달 사고'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에 검찰은 "돈을 두고 나왔다고 하는 게 진술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당혹감은 감추지 못했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 전 총리에게 1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관리부장과 함께 선거 사무실에 갔는데 손님이 꽉 차있어 문만 열어보고 그냥 돌아왔다"며 "사람이 많이 있는 데서 돈을 줄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라니 진실 쪽으로 이야기한다"고 밝혀 검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또한, "나중에 한 전 총리에게 그 돈을 전달했는지 회사에 반납했는지 개인적으로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 전 총리는 단 둘이 식사할 때도 돈을 잘 받지 않았다"고 말해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한 전 총리가 오찬 자리에서 당시 산자부 장관이었던 현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곽영욱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는 공소장 내용도 부인했다.

곽 전 사장은 "'곽영욱을 부탁한다'는 게 아니라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잘 부탁한다'고 한 것"이라며 "그게 한 전 총리가 모두에게 인사로 그렇게 말한 것인지, 당으로 돌아가는 정세균 장관에게 당에 돌아가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 (한 전 총리의 말은) 당시 현직 장관이던 정 대표에게 '곽영욱을 잘 봐달라'고 한 것으로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에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 백승헌 변호사가
해당 진술이 담긴 검찰 조서를 제시하며 "왜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 내용과 오늘 내용이 다르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저를 잘 봐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맞는 것 같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던 것을 바꿨다.

그러자 재판장이 "검찰에서의 진술과 오늘의 진술 중 어떤 것이 사실과 같냐"고 다시 확인했을 때도 곽 전 사장은 "검찰에서의 진술이 맞다"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 하기도.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놀고 있으니 답답하다, 도와달라"고 했다는 공소장 내용에 대해서도 부인했는데, "그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라 한 전 총리가 거꾸로 물어본 것 같다"며 "그 말에 대해 나는 '안사람이 일을 해야 건강해 진다고 한다'고 답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곽 전 사장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받지 못했는데 그 즈음 한명숙으로부터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신문에 나선 이태관 검사가 "석탄공사 사장 임명을 받지 못한 후 한 전 총리로부터 '기다리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느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좋은 자리 간다'가 아니라 '그냥 계시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답했다.

답답했는지 재판장이 '무슨 뜻인가?'라고 질문하자 곽 전 사장은"좋은 자리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나이도 많고 하니 그냥 그대로 지내도 괜찮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한 전 총리의 공소 내용 중 '골프채 매입'에 대해서는 이날 유일하게 사실을 인정한 곽 전 사장은 검찰을 기쁘게(?) 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과의 친분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골프용품 가게를 방문해 골프채 세트를 구입한 사실을 집중 거론했는데,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여성부 장관 시절 골프채와 가방 세트 등을 선물한 경위에 대해 "생각해보니, '장관을 그만두고 쉴 때 골프나 배우라'고 드린 것 같다"고 설명하며 인정했다.

검찰이 반색하며 이어진 질문을 통해 한 전 총리와의 금품수수 관계에 대해 또 다른 '승리(?)'를 기대하며 물었으나 곽 전 사장은 검찰의 기대를 저버렸다. 

검찰이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여성단체 운영비', '선거자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준 적이 있지 않냐"며 금품 수수 관계를 묻자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여성단체 운영비로 10만원권 수표로 1천만 원이 주기도 했지만 장관이 된 후에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 주지 않았다"고 말해 오히려 한 전 총리를 도와주는 격이 되었다. 

이날 공판의 하이라이트는 곽 전 사장이 "검찰 수사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한 대목이다. 

곽 전 사장은 지난 연말,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 공여 사실을 말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검찰 조사를 밤 12시까지 받는데 이후에는 검사 요청으로 검사실에서 면담을 했다"며 "새벽 1시나 2시까지 변호사 없이 검사와 면담을 하면서 정치인들 관련 이야기를 했다"고 밝혀 검찰을 당황하게 했다.

또한, "새벽까지 면담을 하고 검찰청 구치감에서 기다리다 구치소에 돌아오면 새벽 3시가 될 때도 몇 차례 있었다"며 "구치소 기상시간이 새벽 5시쯤인데 심장이 조여오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어 너무 힘들었다, 교도관들이 저사람 뒷문으로 나간다(죽는다)고들 했다"고 말하기도.

곽 전 사장은 또 "검찰 조사에서 검사가 '전주고 나온 사람들(에 대해) 다 불어라'고 했다"며 "죄 지은 채 검사 앞에 서니 너무 무서웠다,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의 느닷없는 증언에 당황한 검찰의 이태관 검사는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직접 곽 전 사장을 조사했던 이 검사는 "조사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곽 전 사장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 가족들을 검사 집무실에서 면회시키거나 휴식을 취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조사가 안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몸이 안 좋으면 구치소에서 강제로 검찰청으로 데려온 적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 검사는 '새벽에 구치소로 돌아갔다'는 곽 전 사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구치소 출청 기록을 제출하겠다"며 곽 전 사장의 증언에 반박했으나 곽 전 사장은 변호인단의 반대심문에서 "검찰 조사를 계속 받으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죽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고 다시 한 번 말해 '강압수사' 증언을 거두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무서웠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진술을 여러 번 바꾸었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직원들이 저한테 달러를 줬다고 검찰에 말했고 저도 처음에 한 전 총리에게 3만 달러를 줬다고 한 바 있어 추궁을 계속당했기 때문에 진술을 바꿨다"며 "수사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진술을 바꾼 것이다,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총리 공관의 도면 등을 제시하며 문제의 오찬 상황을 물었으나 곽 전 사장의 답변은 시원치 못했다. 곽 전 사장은 총리 공관 구조를 그린 도면을 보고도 오찬 장소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고 오찬 당시 참가자 및 수행원들의 동선을 그린 도면을 보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오찬 당일 미 공군을 방문한 한 전 총리의 사진을 제시하며 "한 전 총리가 당시 입은 옷이 치마인지, 바지인지, 어떤 색인지 기억나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근무일인 것은 알겠는데 치마인지, 바지인지는 모르겠다"며 "주머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행원이 핸드백 등을 들고 있었는지", "한 전 총리가 겨울철 외투를 입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도 "기억나지 않는다"가 전부였다. 

이날 공판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11 시 30분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결국 이날의 공판은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됐으며, 검찰로써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곽 전 사장의 증언은 12일에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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