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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계의 풍운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사의 뒤안길로: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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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계의 풍운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사의 뒤안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치부이다

고은영 | 기사입력 2009/05/23 [12:36]

정치계의 풍운아, 노무현 전 대통령 역사의 뒤안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치부이다

고은영 | 입력 : 2009/05/23 [12:36]

 

 

파란만장한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23일, 오전 경남경찰청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음을 발표하였다.

 노무현, 한때 그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풍운아’의 마지막이 너무도 초라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지금이다.
서거가 공식 확인된 노무현(盧武鉉 63)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6일 경남 김해에서 부친이신 노판석씨 모친인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출생하였다.
노 전 대통령의 형제로는 큰형 영현씨(英鉉)와 둘째형 건평씨(建平 구속중), 누나 명자(明子)씨, 여동생 영옥씨(英玉)가 있다. 두 형은 1967년, 1968년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세무 공무원이 되기도 됐다.
김해 진영읍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노 전대통령은 진영 대창초등학교(1959년)와 진영 중학교(1963년), 부산 상업고등학교(1966년)를 졸업했다. 농민 가정에서 성장한 노 전 대통령은 대학 진학을 포기, 1968년 3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하여 강원도 원주에 있는 육군 1군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군 제대 후, 고향에서 부인 권양숙씨와 1973년 1월 결혼해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를 낳았다.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 응시 자격을 주는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한 노 전대통령은 두 차례의 낙방을 겪으면서도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유일한 고졸 출신으로 끝내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노 전 대통령은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7개월 만에 사직하고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1981년 제 5공화국 정권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은 혐의로 대학생 20여명을 기소해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부림사건(釜林事件)’ 변론은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학생, 노동자 등이 연루된 각종 인권사건에 뛰어들어 점차 인권변호사로 인식됐다.
특히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됐다가 제 3자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부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초선의원 시절인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는 ‘전두환 살인마’를 외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 던져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부산에서 ‘지역타파’를 내세우며 14대 총선(1992년), 부산광역시장 선거(1995년), 15대 총선(1996년)에 출마했으나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확률이 희박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연이어 출마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이란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은 2000~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민주화 세력을 기반으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일방적인 지지 철회로 후보 단일화는 깨졌지만 당시 ‘노사모’ 등 팬 클럽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노 전대통령의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판사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뒤 검찰의 불만을 받자 검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최초로 평검사와의 대화를 마련했지만 오히려 불신이 깊어졌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선거법 중립 의무 위반, 경제 파탄, 측근 비리 등의 이유로 16대 국회에서 대통령 최초로 탄핵되기도 하여 2004년 3월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14일까지 63일 동안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재임 기간 중 측근인 안희정씨와 최도술씨 등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수감되는 모습을 보기도 됐다. 청와대에서 집사로 불렸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역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과 노 전 대통령 특수 활동비 12억 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도 비리연루 의혹에 휘말려 검찰에 소환 구속되었는데, 2008년 12월 형 노건평씨가 세종 캐피탈 대표 홍기옥씨(구속)로부터 농협 중앙회가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에게 청탁해 달라는 명목으로 29억 6300만원을 받아 구속 수감되기도.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 대통령 가족이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받아 피의자 신분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의 계속된 압박을 받던 노 전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의 재소환을 앞두고 23일 오전 6시50분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자택 뒷산 언덕에서 투신, 뇌출혈상태에서 병원에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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