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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사진단독>봉하에서 양산, 그리고 다시 봉하까지: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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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사진단독>봉하에서 양산, 그리고 다시 봉하까지

노 전 대통령, 석양에 지다

정 면 | 기사입력 2009/05/24 [04:54]

<종합-사진단독>봉하에서 양산, 그리고 다시 봉하까지

노 전 대통령, 석양에 지다

정 면 | 입력 : 2009/05/24 [04:54]

대한민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23일, 오전 40분경, 봉하 마을의 ‘부엉이’바위에서 경호관 시선을 돌리고 3~40m 아래로 투신, 경호관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묻자 경호관이 ‘가져올까요?’답하자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한 뒤 산 아래를 보며 ‘저기 사람들이 있네’라고 경호관의 시선을 돌린 후 산 아래로 몸을 던졌다.

경호관과 사저의 비서관들이 급히 노 전 대통령의 몸을 차에 싣고 김해의 세영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불명, 이때가 7시 5분경, 다시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으로 급히 이송 8시 23분경부터 10분간 응급시술을 했으나 소생의 기미가 없음.

8시 30분경, 병원은 응급시술에도 소생의 기미가 없자 시술을 중단, 공식적으로 서거했음을 인정.

권양숙여사가 9시 25분경, 도착하여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확인하고 실신.

이후 서거를 공식확인하는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백승완원장의 발표가 이어졌으며, 곧 이어 경남경찰청의 발표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속속 병원으로 몰려 들었으며,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을 비롯한 노 전 대통령의 유족 및 지인, 그리고 정치적 동지들이 모여들며 장례문제 협의했다..

경남경찰청은 오전 11시경부터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의 내, 외부의 경비를 강화하고 일반인들과 취재진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

이후 각 정치인들이 소식을 듣고 급거 양산으로, 혹은 봉하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공식 확인하는 절차 등이 진행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믿지 못하는 전국의 국민들이 수 없이 병원과 봉화 마을로 몰려들고 오후 5시 40분경, 병원에서 봉하 마을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출발,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정치인들과 비서진, 그리고 유족들은 병원에서 마련해 준 버스 2대로 운구를 따라 봉하 마을로 향했다.

6시 30분경, 봉하 마을로 들어 선 운구 행렬을 보며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노사모’와 국민, 그리고 봉화 마을 주민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운구가 병원을 떠나기 전부터 마을 회관을 ‘장례식장’으로 정한 유족들의 의지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정성스레 장례식장을 꾸렸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동아, 중앙일보의 기자들과 모인 추도객들과 마을 주민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생겨 결국 기자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기도.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7시경, 마을 회관에 안치되고 서울에서 조문차 내려 온 정치인들도 조문을 하기 시작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비롯,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한명숙 전 총리 등 ‘참여 정부’시절의 각료와 정치인, 비서진들이 차례대로 조문을 했으나 일부 정치인들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부인과 함께 조문을 거절 당했으며, 이회창 선진자유당 대표, 한승수 국무총리 등 전, 현 여권의 정치인들은 계란 세례 등을 받으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는 성난 ‘노사모’회원과 마을 주민들로 인해 장례식장에 세워지지도 못한 채 부서져야 했고, 각 언론사 기자들도 한때 취재를 거부당하는 등의 일도 일어났다.

현재 봉하 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정확한 수를 알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있음이 확인됐다.

새벽을 넘기면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7일장으로 하되, 정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국민장’과 가족들만이 치루는 ‘가족장’의 결정을 두고 아직 논의 중임이 알려졌다.

장례 일정은 빠르면 24일에 발표될 가능성이 많다.

새벽 3시가 넘은 현재, 봉하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는 1km 정도의 길가에는 촛불이 줄을 지어 켜져 있으며,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오후 5시부터 서울 시청 옆 대한문 앞에 ‘임시 분향소’가 설치되어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역시 새벽을 넘은 시간까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봉하 특별취재: 정 면 기자. 정리 NTM 특별취재단: 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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